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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의 역사와 한국 음식 문화 속 의미

by 한국음식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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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은 삶의 필수 소스로 자리한 한국의 대표적 발효식품이다. 콩을 삶아 메주를 띄우고 장독대에서 숙성해 간장·된장·청국장 등으로 갈라지는 과정은 농업·가사·공동체의 리듬을 반영한다. 이 글은 기원·제조·근현대 변천을 깊게 살펴 된장이 어떻게 한식의 ‘맛의 중심’이 되었는지 설명한다.

기원과 역사적 전개

된장의 기원은 콩을 중심으로 한 장(醬) 문화의 장기적 발전 속에 놓여 있다. 한반도에서 콩을 삶아 발효시켜 저장·조미에 사용한 기록은 오래되었고, 삼국시대 이후 장류의 존재는 문헌과 민속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초기의 장류는 상당히 광범위한 개념으로 소금·곡물·어류·콩을 여러 방식으로 가공해 만든 식품을 아우르며, 채소·생선과 함께 저장하고 계절에 맞춰 꺼내 쓰는 생활형 보존식이었다. 고려·조선으로 이어지며 메주 띄우기와 장독대(장독·옹기 보관)의 관습이 정착되고, 계절 노동과 공동체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장 담그기가 집안의 중요한 노동으로 자리하여 김장과 더불어 마을 단위·가족 단위의 협업을 요구했고, 장독대는 집안의 경제·위생·식문화 전반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된장은 단지 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니라, 단백질 공급과 영양 보존, 의례적 의미까지 관장했다. 예컨대 제사상·손님접대·병환자 음식 등 사회적 상황에 따라 장의 쓰임과 숙성 정도가 달라졌고, 지역별 기후·토양·물의 차이는 메주의 성격과 숙성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편 외래 문화의 영향으로 제조법·명칭의 변동이 있었지만, 된장은 한국 고유의 재료·생산·소비 구조 속에서 독자적인 미감(감칠맛의 결)과 조리법을 발전시켰다. 즉 된장은 농업사회에서의 자급자족적 지혜와 발효 미생물의 자연적 결합으로 탄생한 ‘생활의 발효 기술’이었다.

메주 만들기와 발효의 기술적·미생물학적 이해

된장의 핵심은 메주를 통한 생물학적 전환 과정이다. 전통 방식에서 콩은 잘 삶아 으깨어 메주로 빚어 건조·발효 단계(메주 띄우기)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표면과 내부에 자연환경의 미생물이 붙어 자라며 단백질 분해와 아미노산·유기산 생성이 일어난다. 전통적 메주 띄움은 사람과 환경이 빚어내는 복합적 생태계 활동이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단백질 분해에 관여하는 바실러스 계열(예: Bacillus spp.), 곰팡이류(아스퍼질루스·뮤코르 등)와 젖산균 같은 미생물군이 순차적·동시적으로 작용해 향·맛·질감을 만든다. 이들 미생물의 상호작용은 온도·습도·통풍·소금농도 같은 물리적 요소에 크게 좌우되므로, 장독대의 위치·항아리의 재질·겨울의 냉기 등 ‘지역적 조건’이 된장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전통 제조법에서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고 장을 장기 숙성하면 표면의 액체(장물)가 간장(액체성 간장)으로 분리되고, 건더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형의 된장으로 안정화된다. 이때 효소적 분해로 인해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핵산계 물질이 증가하고, 숙성 기간에 따라 짙은 향과 풍미가 깊어진다. 현대에는 미생물학적 지식과 위생 기준이 도입되어 전통 방식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많다. 예를 들어 메주 띄우기의 통제, 소금농도·pH 관리, 온도 조절을 통해 품질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필요한 경우 특정 균주를 접종해 숙성 속도와 향을 조절하는 방식도 쓰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개입은 전통적 지역 특색을 희석시킬 수 있기에, 장인의 감각과 과학적 관리의 균형이 중요한 숙제다.

근현대의 변천: 산업화·표준화·재발견

근대 이후 된장은 대량생산과 유통·소비 구조의 변화 속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냉장·운송·품질관리 기술의 발전과 함께 공장형 된장·간장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정의 장독대 풍경은 빠르게 사라졌다. 동시에 표준화된 제품은 전국적으로 균일한 맛을 제공했지만, 지역 고유의 숙성 풍미나 미세한 변주(발효년수·항아리 향 등)는 감소했다. 1980~2000년대에는 위생·안전 규제, 식품첨가물·살균 공정의 도입으로 제품의 안전성은 개선되었으나 전통 발효의 복합적 향미는 일부 잃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21세기 들어선 다시 전통식 장·수제장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슬로푸드’·전통발효 재발견의 흐름, 로컬푸드·지속가능성 담론은 된장을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문화유산·지역자원으로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또한 현대 영양학은 발효된 콩 제품이 단백질 소화·미소영양소 흡수·풍미 증진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보고하며, 비건·글루텐프리 식단에서도 된장 기반 소스의 활용도가 커졌다. 산업 측면에서도 장인 브랜드·전통 방식 제품의 프리미엄화, 관광·체험·교육 프로그램(메주 띄우기 체험 등)이 활성화되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새 길이 열리고 있다. 한편 기후변화·수입콩 의존·종자 보전 같은 문제는 된장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된장은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한국 농업·가사·공동체의 역사와 미각을 담아낸 발효 유산이다. 집에서는 소량의 메주를 만들어 계절감과 미생물의 변화를 관찰해보는 것이 좋은 시작이다. 지역 생산자의 전통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재료·생산방식을 확인하며 맛의 다양성을 즐겨보자.

 

결론

된장은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한국 농업·가사·공동체의 역사와 미각을 담아낸 발효 유산이다. 집에서는 소량의 메주를 만들어 계절감과 미생물의 변화를 관찰해보는 것이 좋은 시작이다. 지역 생산자의 전통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재료·생산방식을 확인하며 맛의 다양성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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